로맨틱하고 코믹한 시츄에이션 - 로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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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vity라는 영화와 두 노래 영화와 음악

영화 <그래비티> (Gravity, 2013, 알폰소 쿠아론 Alfonso Cuaron 감독)는 소리의 영화다. 영화관에서 산드라 블록의 얼굴만 쳐다보며 우주공간에서는 그녀의 동료 조지 클루니의 목소리에, 지상으로부터는 에드 해리스의 목소리에 흠뻑 빠져서 1시간 반 동안의 초집중 상태를 경험했다. 이 영화는 또한 말의 영화다. 우주와 우주선의 고요 속 산드라 블록의 말은 하나 하나 가슴 속에 파고 든다. 

그리고 클로즈업의 영화이다. 예쁜 얼굴은 아니고, 보톡스도 적잖게 맞은 것 같은데도 산드라 블록의 얼굴은 이 영화에서는 유독 특별하다. <에일리언> 시리즈의 시고니 위버가 가진 여전사 장르의 얼굴도, 몸매도 아니다. 고해성사를 엿듣는, 아니, 받는 경험 같기도 하고, 산드라 블록 특유의 흩어지는 목소리를 따라 나도 산산조각 흩어지는 것 같다. 하여튼 많이 울었다. 어흑... 딸을 잃은 경험을 이야기할 때나 우주 속 미아가 되어 지상의 어느 중국(그렇다, 꼭 Chinese Man이어야 했나 보다) 남자 목소리를 들으며 그에게 말을 건네는 장면들이 지극히 상투적임에도 마치 사람은 결국 상투적일 수 밖에 없다는 듯, 그 상투적인 틀 속에서 진실이 빛날 때 우와... 밑으로 밑으로 같이 가라앉는 느낌이랄까. 우주의 심연을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영화 <그래비티>에서


영화 <잔 다르크의 수난>에서

나를 초집중 상태로 이끈 이 영화를 떠올리면 꼭 같이 떠오르는 노래들이 있다. 하나는 존 메이어의 그래비티, 다른 하나는 사라 바렐리스의 그래비티. 제목이 같아서? 물론 그렇다. Gravity 중력. 이 말이 왠지 모르게 나를 잡아끄는 게 있다. 중력이라서 그런가. ㅋㅋ 제목도 그렇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 참 좋다.


존 메이어(John Mayer)의 "Gravity"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이 영상 밑에서 난 베스트 댓글을 보았다. 
Hope that guitar was 18. 저 기타가 미성년자는 아니었기를. 

우하하하하!!!!!!

왜 그 많은 헐리웃의 여자들이 존 메이어한테 빠지는 지... 알겠네.

사라 바렐리스(Sara Bareilles)의 "Gravity"

INFP 잔다르크형 로코시

나랑 아무런 상관 없는 여행을 다녀오게 한 그 직장에서 이른바 "승진"을 했다. 

이제 나는, 어느 대학교 인문학 연구소의 행정실장이다. 실장님이라니. 

원래 있던 실장은 이런저런 이유로 그만두게 되었다. 그런데 국가에서 10년으로 정해준 프로젝트의 끝물을 빨아먹고 있는 자리인지라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돌아서 돌아서 나한테 왔다. 나는 이 자리든 원래 있던 자리든 남은 1년 반을 여기서 끝물을 빨아먹고 떠날 사람이니까, 이왕이면 돈 쪼금 더 주는 자리가 낫겠다 싶어 알았다고 했다. 어차피 결정된 거였으니 거절하는 척할 필요도 없었다. 

작은 연구소의 행정실에서 옆자리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파티션만 넘어가면 되는, 그야말로 옆자리. 물걸레로 책상과 바닥의 먼지를 닦아내고 컴퓨터와 서랍장만 바꿔치기 하니 이사는 1시간이 채 안 걸렸다. 아, 그래도 책 옮기고 컴퓨터 날르고 서랍장 밀고 어쩌구 하고 나니 허리가 아프다. 아, 허리가 길어 슬픈 몸이여...

지난 6년 간 쌓인 서류들을 대부분 버렸다. 책장 한 줄 반을 비워냈다. 허리는 아프지만 버리는 쾌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재활용 용으로 버릴 종이, 찢어서 버릴 종이 (변변한 파쇄기 하나 없다. 젠장), 냅둘 종이를 구분하는데, 내가 여기 취직한 지 얼마 안 돼서 뽑아놓은 듯한 MBTI 성격 유형 검사가 나왔다. 어렴풋이 기억이 나고, 세상에... 사십대 중반을 넘긴 내가 되돌아보는 마흔 살의 내가 풋풋해 보인다. 

INFP 잔다르크형 이란다. 

- 마음에 드는 문장 (꼭 그렇진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 남을 지배하거나 좋은 인상을 주고자 하는 경향이 거의 없다. 
- 고개가 끄덕여지는 문장: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 도덕과 비도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 신념이 뚜렷하여 겉으로는 주장을 안 해도 속으로는 열정이 있다 / 규칙을 몸서리 치듯 싫어하며 반복되는 일상적인 생활을 싫어한다. 
- 웃음이 나오는 문장: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융통성이 아주 없는 편이다 / 상대방을 배려해서 빙빙 돌려서 은유적으로 의사 표현한다. 
- 슬픈 문장: 감정 조절이 미성숙하다 / 아이디어가 많으나 실행에 잘 옮기지 못한다 / 일을 잘 벌이나 마무리가 서툴다 / 내면의 갈등이 심하여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이 종이 위에 포스팃이 두 개가 붙어 있는데, 손글씨로 이렇게 적어놨다. 
- 자유는 책임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유를 두려워하는 이유이다. - 조지 버나드 쇼
- 보통의 인간은 빗속에 서 있는 소와 같은 극기심으로 고통과 재난을 받아들이는 순응주의자이다. - 콜린 윌슨, 『아웃사이더』의 작가로 영국의 신실존주의자. 

실존주의자는 뭐고 신실존주의자는 뭘까? 하여튼 영화 아웃사이더를 십대 때 절절하게 본 기억이 난다. 

잔다르크. 밀라 요보비치의 <잔다르크>는 티비에서 보다말다 했던 기억이 있다. 칼 드레이어의 <잔 다르크의 수난>을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영화수업 때 그걸 보고 어찌나 인상적이었는지... 나중에 <그래비티>의 산드라 블록을 보면서 <잔 다르크의 수난>을 떠올렸다. 


잔다르크형? 그래, 나는 영웅심리가 있기는 하다. 그런데 잔다르크가 영웅인가? 그녀는 순교자에 더 가깝지 않은가? 그렇다면 잘 모르겠다. 난 희생이 싫다. 하긴... 순교/수난과 희생은 좀 다른 것 같다. 나도 어린 시절,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교회도 다니고 집에서 혼자 기도도 열심히 하고 그랬다. 음... 종교조직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그런 걸 떠나서, 애를 낳아보니 종교고 신이고 뭐고 삶은 태어남에서 죽음까지 그냥 생물학이다. 

개발해야 할 점: 
-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는 능력이 필요
- 대인관계에서 가치관에 맞지 않는 것이라도 융통성을 보일 필요가 있다. 
- 꾸준함을 기르기 위해서 아주 작은 일부터 통제력을 갖는 것이 필요

나랑 아무런 상관없는 여행을 다녀왔다 로코시

나랑 아무런 상관없는 여행을 다녀왔다. 내가 임금노동하는 연구소에서 보스가 가야 된다고 해서, 게다가 총무역할을 해야 되는 직원이 안 간다고 했고, 그런 다음엔 그 여파로 짤려버렸기 때문에. 후덜덜. 단지 그것 때문에 짤린 건 아니다. ......

 

진짜 34일은 부담스럽고, 애도 여러모로 걸리고, 가고 싶지 않은 곳을, 딱히 함께 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가서 34일 동안 붙어 지내기가 넘넘 끔찍해서 안 간다고 했었는데... 옆에서 일하던 사람이 짤리는 걸 보고는 안 갈 수가 없었다.

 

보스는 역사학자이고, 대학교수이다. 그는 34일로 일본 하기와 시모노세키로 역사기행을 떠난다고 결정해서 통보했고, 자그마치 17명의 교수, 강, 대학원생, 그리고 나 같은 그냥 임금노동자가 교수든 강사든 연구자든 그들은 노동자라는 말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는다 - 그를 따라가야만 했다.

 

보스에게 역사란, 박물관과 동상과 유명 엘리트인사들의 탄생지, 딱 그거다. 내가 생각했을 땐 역사가 꼭 그것만을 뜻하는 건 아닌데, 고등학교 3년 내내 국사를 를 받은 내가 뭔 할 말이 있겠나... 그렇다고 내가 입 다물고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런 걸 유난히 못하기도 하거니와, 우리나라 역사교육이 이래서 썩었다는 생각이 치밀어올라서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몇 마디 했었다. 지금 텅 비어있는 이 낡은 집에서 누구누구가 태어났다던지 잠깐 살았다는 것이 이 사람이 나중에 메이지유신을 일으키는 주요 역할을 한 거랑 무슨 상관이냐, 뭐 이런 질문을 해서 보스의 박사과정 제자 몇몇을 무척 당황하게 하거나 불쾌하게 하거나 혹은 슬며시 미소 짓게 만들었다. 보스한테 들리기엔 좀 거리가 있었다. 만약 들었다 해도 못 들은 척 했을 것이다. 교수들이 그렇다.

 

이딴 식으로 하면서 여기서 일한 지 6년이 다 돼간다. 징하다, 징해. 내가 불쌍한 건지, 연구소가 불쌍한 건지. , 돈 주니까 고맙다. 결론은 늘 같다.

 

그 때 일본 전역이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간 하기와 시모노세키는 서울보다 더 덥고 습했다. 822일은 35, 23일은 34, 24일은 35도였다. 게다가 뜨문뜨문 놓여있고 햇빛을 피할 그늘을 찾아보기 힘든 유적지들을 대부분 걸어서 찾아다녔다. 말이 패키지여행이지, 미리 결정한 목적지만 가는 게 아니라 걸어가다가 뭐가 보이면, 그러니까 뭔 신사나, 뭔 엘리트인사의 탄생지 표지가 보이면 어김없이 여기도 가보죠라는 보스의 말이 있었고, 바로 여긴데 잠깐만 들어가보자는 60살 대학교수의 요구를 가이드도 거절하지 못했다. 그랬다. 보스는 하기와 시모노세키의 이 루트를 다 꿰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행사와 패키지 여정을 협의하면서도 속으로는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다가 거기도 보고, 오다가 여기도 봐야지. 역사학자 치고도 보스는 유난히 답사란 걸 좋아한다. 그리고 자기가 여러 사람을 앞에 두고 이 유물은 뭐가 어쨌고 저 동상은 뭐가 어쨌다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몇 년도에 유명한 누가 몇 명의 사절단을 거느리고 어디를 방문했는데 뭐가 어쨌더라 하는.

 

썬글라스에 양산에 겨드랑이엔 손수건까지 끼고 뜨거운 햇빛 아래를 걷다보면 여기가 아닌가보네라는 말이 들리고 돌아나오기도 하고. 또 한참을 걷다보면 여기다해서 고개를 들어보면 그냥 땅 위에 무슨 나뭇더미랑 돌이랑 밧줄 같은 게 있기도 했다. 하여튼 우리는 그를 따랐다. 그리고 그를 기다렸다.

 

보스의 키워드는 체면이다. 흔히 중년 남자교수 하면 떠올릴 수 있는 키워드로 권위의식, 꼰대, 꼴통, 답정너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보스는 뭐니뭐니해도 체면이 중요하다. 이 보스 전 보스의 키워드는 왓더크레이지뻑이었다. 그거랑 유럽바라기. 그리고 와인, 커피. 지금 보스는 전 보스와는 정반대이다. 와인과 커피는 입에 대지도 않는다.

 

하여튼 이번 일본 기행에서 그 놈의 체면 때문인지, 17명의 신하를 이끌고 목적지에 도달한 보스는, “여기다라는 말 뒤엔 언제나 한참동안 조용히 일본어로 새겨진 안내문구를 읽었다. 일본어 실력이 썩 좋진 않아서 더 오래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나서는 또 한참동안 말없이 동상이나 나뭇조각이나 돌멩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는 17명의 군중을 향해 돌아섰지만, 군중은 늘 일부는 길 건너에 있거나 계단에 앉아있거나 나무 아래 서 있거나 고양이랑 놀고 있거나 화장실에 들어가 있는 등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그러면 보스는 왜 거기 계세요,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했다. 괜찮다고 하면, 이건 중요하니까 이리로 오시라고 했다. 그런데 다 중요하다고 했고, 다 이리로 오시라고 했다. 그리고 석사과정생 제자들로 하여금 눈에 안 보이는 사람들을 찾아오게 했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보스는 설명을 시작했다. 설명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살을 태우는 뜨거운 햇빛 아래, 아니면 아무도 찾지 않아 에어컨도 없이 푹푹 찌는 낡은 건물 안에서 우리는 그의 곁에 서 있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설명은 너무나도 길었다. 몇 년도에... 유명한.... 몇 명의.... 사절단이... 이건 내가 얼마 전에 쓴 논문에서도 다루고 있는데...... 하는 설명을 듣고 있자면, 턱 끝에서 모인 땀이 뚝 하고 떨어질 때 훅하고 숨을 내뱉으며 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 뛰쳐나와야만 했다. 아니, 자기가 쓴 논문 얘기를 왜 거기서 하고 있냐고. 나 같은 평민도 그랬지만, 거기 간 교수, 강사, 연구자들도 전공분야가 완전히 달라서 거기서 그런 설명을 끝까지 듣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보스에게는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어떻게 마무리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는 체면이 중요하다. 내가 사람들을 모아놨고, 그 앞에서 성실하고 점잖게 설명을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내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았고, 힘들어했고, 계속해서 빠져나갔다는 건, 그들 중 아무도 소리 높여 문제를 지적하지 않은 이상, 전혀 중요하지 않은 거다.

 

같이 갔던 분들 중 누군가는 이번 여행의 목적은 단합인데 보스가 그걸 모른다며 한탄하셨다. 하지만 난 이번에 일본 다녀와서 보스에게는 나름 탁월한 능력이 있음을 깨달았다. 한 연구소에 소속되어 나랏돈으로 인문학의 발전과 연구인력 지원 (그러니까 박사는 넘쳐나는데 갈 곳은 없는 사회문제를 임시방편으로 막아보겠다는 거다)이라는 명목으로 월급 챙겨먹고 있는 20명 가량의 조직원들이 해외에서 무려 34일이나,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세끼를 다 같이 먹으면서 지냈는데, 조직의 분위기가 더 안 좋아지다니! 이번 여행의 테마는 단합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를 기다렸다였다. 보스 입장에서는 나는 최선을 다했다였을 것 같다.

 

희한하다. “개인이나 차이다양성이라는 개념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우리라는 게 없다. “밖에 없다. 그런 걸 보면,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공동체의식이 떨어지고 나밖에 모른다고 탄식하는 사람들이 딱 우리 보스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불평은 모두 다 똑같아야 되는데 똑같지 않고, 튀면 안 되는데 튀는 년놈들이 있어서 열 받는다는 말과 사실 다르지 않다.

 

첫째 날, 인천공항에서 새벽 630분에 집합해 후쿠오카 공항에 내려 버스로 옮겨 타고 바로 답사에 돌입했다. 하루 종일 그렇게 그를 따르고 그를 기다리다가 저녁 6시 넘어서 호텔에 짐을 풀었다. 그 첫째 날 너무 덥고 뜨겁고 습했고, 자유가 없었다. 아찔했다. 남은 이틀 반 동안 그렇게 지내리란 걸 알고 나니 두 번째 날은 자연스럽게 탈출구를 찾게 되었다. 찾아야만 했다. 저녁 먹기 전, 한 시간도 안 남았던 것 같다. 어린 대학원생 조교들과 호텔에서 빌려주는 자전거를 타고 해변으로 달렸다. 자전거로 10분 정도밖에 안 걸리는, 너무나도 가깝지만 너무나도 먼 해변이었다. 그 짧은 시간, 피곤하다고 침대에 눕거나 샤워를 하거나 온천욕을 하면 영영 도달할 수 없을 바다였다. 그를 따르지 않고 그를 기다리지 않는 건, 일종의 반역이었다. 처절한 저항이었다. 자전거로 달리면서, 그리고 해변에서 맨발로 뛰면서 나는 자유를 열 번도 더 외쳤다. 함께 웃었다. 뜨거운 바람이 시원했다.

 

 

이 모든 것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물었다. 인생이 뭔지 빨리 말해. 인생이 뭐냐.

 

인생이 뭐냐는 나의 질문에 남편은 그 때마다 조금씩 다른 답을 내놓는다. 이번엔 뭐라고 했냐면, “인생이 뭐긴. 인생은 그냥 하루하루 사는 거야. 하루를 사는 게 인생이야.” “인생은 하루다라고 생각하니 음... 오늘 하루쯤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은 지는 게임 영화와 음악

에이미 와인하우스(1983.09.14-2011.07.23)

사랑은 지는 게임 (Love is a Losing Game)





후회도 지금 아름답다 영화와 음악

  

에디뜨 피아프(Edith Piaf, 1915-1963). 저렇게 부르는데 박수 치지 않을 수 있을까...

한 때는, 오랫동안 후회라는 말에 괜한 거부감이 있었다. 그런 걸 젊음이라고 하나? 하지만 갈수록 느는 게 후회다. 인생이 후회다. 나쁠 것도 없고 좋을 것도 없이 그저 그렇다. 적어도 여기까지는 왔다.

예술은 아름다움이다. 후회도 지금 아름답다.

마리옹 꼬띠아르. 미친 거 아니야? 이 아름다운 프랑스 여자들. 어쩔... <라 비 앙 로즈(La Vie En Rose / La Môme)>(2007, 올리비에 다한(Olivier Dahan) 감독)에서.

여기 미친 여자가 또 있다. 아들 따라 영화관 가서 만화영화 보면 열에 아홉은 푹 자고 나오는데, 이 영화는 재밌더라. 이 장면에서 속으로 미친년! ㅋㅋㅋ했다. 강한 동일시?

1994. 도리스 되리(Doris Dörrie)라는 독일 여자감독이 만든 <파니핑크(Keiner Liebt Mich)>라는 영화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게이 남친에 대한 로망은 <파니핑크>의 오르페오에서부터 싹텄던 것 같다.

오늘 난 후회와 웃음이 맞닿은 지점에 잠시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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